문무학

어떤 낱말

  친구 아버지의 회갑에 가서 절을 넙죽이 했다. 내 손을 잡은 그 분의 굵은 손마디에선 정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얼굴을 나이 한 살적부터 일 년에 한 번씩 빛바랜 사진으로만 보며 커왔다 그래서 내 목청은 아버지 란 말을 영 익히지 못했다 어릴 적엔 더러더러 우리집 머 슴 살던 배 서방을 아버지라 부르자고 하여 눈물께나 쏟 고 사는 젊은 어머니 가슴을 꽤나 아프게 했던 모양이고 서른 넘기며 장가 들 때도 혼주 석엔 숙부님이 앉으셨고 마누라 네까지 그 자리에 제 오라버니가 앉았었다. 
  이 세상 내 목청에 맞지 않는 그런 낱말이 있었다.

호미로 그은 밑줄

  한 평생 흙 읽으며
  사셨던 울 어머니 
  계절의 책장을 
  땀 묻혀 넘기면서 
  호미로
  밑줄을 긋고
  방점 
  꾹, 
  꾹, 
  찍으셨다. 
  꼿꼿하던 허리가 
  몇 번이나 꺾였어도 
  떨어질 수 없어서 
  팽개칠 수 없어서 
  어머닌 
  그냥 그대로 
  호미가 되셨다.

청보리

  도라지꽃빛 입술로 
  봄을 씹던 누부야 
  앞들 논 서 마지기 
  보릿골 이랑마다 
  긴긴 해 허기를 묻고 
  꿈을 캐고 있었제.

  꽃불 타던 산허리 
  뻐꾸기 봄을 울면 
  아지랑이 아물아물 
  나른한 한나절을 
  누부야 청보리 같이 
  그래 살고 싶었제.

후 회

  그랬지, 내가 자장면을 처음 먹어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어
  그 해 가을 수학여행 가는데 여행비 내지 못해 나는 가 지 못했지, 어디로 갔는지 내 안 갔으니 모를 일이고 집의 가을걷이 돕고 있었지, 그 때 부산에서 무슨 사업인가를 하시던 종조부께서 오셔서 “왜 학교에 안 가느냐‘고 물으 셨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학여행 가서 공부 안한다,” 고 대답했는데(돈 없어 수학여행 못가는 것쯤은 정말 아 무렇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렇잖아도 가슴 아플 어머니 보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얘 수학여행까지 안 보 내면 되느냐,”고 나무라시고 (어머니는 그 때 부엌에서 눈 물 훔치셨다), 그 때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구경 시켜 주신다고 가자고 하시며, 말이 십리지 한 시간도 훨 씬 더 걸리는 길을 걸어와 고령주차장 옆 실비식당에 데 리고 들어가서 자장면을 시켜주시곤, 어떻게 먹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얼굴 벌개져 있으니 눈치 채시고 자장을 면 에 잘 비벼 주셔서 먹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정신이 하나 도 없었다) 보고 계시다가 “한 그릇 더 시켜줄까,” 하셨는데 마음속으로는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말 은 못하고 고개 젓고 말았다.

  아, 그 때 나는 왜 고개를 끄덕이거나 “예”라고 대답하 지 않았을까, 지금껏 가슴을 치고 있나니……

바람도 고향바람은

  금산재 올라서면 꿈틀대는 오리방천 
  금천 건너 아늑한 대가야국 도읍지를 
  바람만 건듯 불어도 가야금이 울어 온다. 
  정정골 굽어 뵈는 주산 그 들머리에 
  열두 줄 가얏고 우륵 선생 현이 떨면 
  정정정 우는 산천의 풀꽃 하얀 빛을 본다. 
  왕조의 후예들이 꿈 일구는 교정에는 
  여태도 마르지 않은 궁궐의 샘 하나가 
  그날의 하늘 한 자락 지그시 물고 있고 
  시오 리쯤 주산 능선 듬성듬성 고분 사이 
  청청하게 일어서는 한 줄기 솔바람도
  어쩌면 궐문의 애환 생채기가 아닐는지…….
  오백 년 사직의 묻혀진 영욕이며 
  옛 성터 바윗돌에 푸른 이끼 키워오는 
  바람도 고향바람은 끈끈한 핏빛이다.

우륵

  돌팍새 뿌리내려 물먹은 오동남게 
  명주실 가닥가닥 찡하게 묻어오는 
  하늘 밖 어느 천변의 물소리 불러놓고 
  저무는 왕조의 허술한 돌담을 돌아 
  목마른 한 시대를 절뚝이며 가는 길에 
  물어둘 동구의 이름 가얏고에 실어두고 
  얄타공주 사랑의 늪 그 보다 더욱 깊게 
  선율 위로 번져가던 여름달 풍문 안고 
  수백리 형벌로 가는 휘적휘적 사랑길 
  애당초 궁궐이사 그가 살 곳 아니었대도 
  한 생애 얻은 한이 아무래도 너무 깊어 
  열 두 줄 남은 가락도 그렇듯이 애틋한가.

어떤 동창회

  돈이 없었거나 아니면 실력 없던 
  그런 놈들 한 예순 명 줄서서 입학하고 
  마흔 몇 졸업장 받고 뿔뿔이 흩어졌던 
  실습지에 가꾸던 토마토나 서리하고 
  축사 구석에서 담배 몰래 피던 놈들 
  주름살 몇 줄 얹은 채 마주 앉아 바라보니. 
  초등학교 선생이나 농협의 서기거나 
  6 급이나 7급쯤의 주사나 주사보나 
  가진 것 없기로서야 그 때나 지금이나, 
  고향 바닥 앉아서 들과 산을 지켰거나 
  떠난 들 산과 내를 그리면서 살았거나 
  십오 년 세월의 얼룩 쏟아 놓은 잔을 들며, 
  보통 사람 보통 생활 그것이 다행이라 
  눈치코치 신물 나는 월급쟁이 그런 삶도 
  보이는 그 만큼의 하늘 쳐다보며 장히 사는,

부산ㅡ낱말 새로 읽기· 27

  ‘부산’은 그렇다

  산 이름이 아니다

  자갈치 아줌마

  목소리 펄떡대고

  뚜우뚜

  뱃고동 소리

  부산 떠는 도시다.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

  내쳐서 삼천리를 다 못 가고 마는 땅 
  . . . . . . . . . . . . . .

  가다가 뚝 끊어진 길 끝에 이념만이 선명한

하오의 하늘ㅡ박선생이 사직하던 날

  마흔 중턱 나이로 보는 하늘빛이 서러워서 
  퇴직금 부피만한 횟집 하나 한다는데 
  어쩌랴 가는 사람을, 또 어쩌랴 남는 사람.

  소낙비로 지고 가던 젊음의 뒤안길을 
  손때 묻은 풍금 건반 ‘뜸북 뜸북’ 눌러 보며 
  하고픈 말씀들일랑 눈시울에 붉혀놓고......

  스물 세 해 외진 길의 힘에 겹던 짐을 풀 때 
  차라리 가슴 닫아 먼 산에 눈을 두는 
  그런 날 하오의 하늘 바람만 썰렁 분다.

도회의 밤

  겨운 목숨 달래다가 
  잿빛 받아 돌아오면

  지친 포도 위에 
  누워 우는 오늘의 넋

  뉘랑도 
  채우지 못한 
  깊은 여백 샘을 판다.

  피뢰침에 걸린 달과 
  불고 간 바람 끝에

  밀려난 고향이 앉아 
  테를 닦는 하늘 속에

  빈주먹 
  내 몫으로 남은 
  종이연이 나른다.

아지랑이

  봄빛 품속으로 돌아온 아지랑이 
  초록 여린 풀잎 끝에 무지개로 영글다가 
  복사꽃 망울 터지자 풀어놓고 빛 무리.

  아물아물 아지랑이 나비가 동무되어 
  나래나래 어깨 겯고 들길 따라 흘러가고 
  아직은 풀잎 연한 목이 발돋움을 하고 선다.

밤, 가을은

  둥지에 묻은 사유 초롱초롱 눈을 뜨고 
  해 묵은 가지 끝에 흐르던 별빛들이 
  이 밤엔 그리움 하나로 차돌처럼 익는다. 
  윗녘엔 산도 있어 계곡 메운 물소리가 
  얼마쯤 흘러가다 머무는 언저리에 
  차라리 내일로 향한 잎 하나를 떨군다. 
  마음밭 이랑마다 뒤척이는 꿈을 묻고 
  허전히 가을밤을 가고 있던 생각들이 
  등심지 돋운 불빛에 하이얗게 타고 있다.

지평선

  내가설사거기까지혼신으로갔다해도너는또그만큼을

  물러서서바라보며팽팽한거리를두고영원하는신기루

민법 강의실에서

  법을 모르는 우리들이 앉아서 노교수의 땀 젖은 목소리 로 권리를 배운다.

  살아남기 위하여 허락한 자유는 평등의 이름으로 조금 씩 우리들 곁을 떠나가고 결국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 은 작은 몫일 뿐, 그것마저도 또 얼마를 내놓아야 할지 모 른다. 자유, 평등 그 가깝고 부드러운 단어의 베일속에서 다만

  “진의가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 라는 법조문을 외워두고 싶었다.

풀과 나무

  풀은 낮게 자라고 나무는 높게 자란다 
  땅 가까이 하늘 가까이 저마다 잎을 펼치고 
  이 땅에 곧은 뿌리를 함께 박고 서 있다. 
  풀은 짧게 나무는 길게 그늘을 거느린다 
  나무 그늘은 언제나 풀 그늘을 덮을 수 있지만 
  풀 그늘 그는 잠시도 나무 그늘을 덮지 못한다. 
  그래도 풀은 자란다 때 맞춰 꽃을 피운다 
  묻힌 그늘 속에서도 까만 씨앗을 익힌다 
  또 다시 태어나기 위해 떠날 때도 알고 있다. 
  풀과 나무 사이 혹은 땅과 하늘 사이 
  때로는 가깝기도 하고 한정 없이 멀기도 한 
  그 사일 가늠하기엔 우린 마냥 모자란다. 
  풀은 결코 나무가, 나무 또한 풀이 되지 못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잎을 함께 흔들지라도 
  나무는 나뭇잎을 흔들고 풀은 풀잎을 흔든다.

달과 늪ㅡ우포에서

                        고 
                      랐
                    올
                  떠
                몃    
              슬 
            치 
          만 
        저 
      은 
    달 
  늪 
    은 
      끝 
        모 
          르 
            게 
              슬 
                쩍  
                  갈 
                    앉 
                      았 
                        다 
  은근하게 달빛이 늪의 안을 헤집지만 끝 모를 그의 
  깊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ㅡ코의 시간

  중년 사내의 곯아떨어진 잠을 듣는다 
  황소 한 마리, 우악스레 몰고 가며 
  산 하난 족히 들썩거릴 소울음 소리낸다.
  쉰다는 잠에까지 그 깊은 잠으로까지 
  버거운 짐 끌고 가서 되새김질 하고 있다. 
  가끔은 숨도 멈추고 뒤척거리기도 하면서……

  사내의 깊은 잠은 코에게 준 발언 시간 
  목구멍에 걸려 걸려 뱉아 내지 못하고 
  살렸구 살아 볼렸구 삼켰던 말 쏟는 것. 
  아무렴 알고 말고 말로 하지 않아도 
  고달픈 그 만큼씩 거세지는 코청의 떨림 
  털어야 털어버려야 다시 서지 않겠느냐

그 여자

  정말이지 굳이 보고자 한 건 아니었다 
  신호 기다리다 고개 돌렸는데 
  그 여자 화장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유리 건너 훔쳐내는 사내가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그 여자 바삐 분 바른다 
  입술엔 손도 안 댔는데 신호등은 푸르다 
  루즈는 언제 바르나 다음 신호에서 
  연동제 비끄러지면 그냥 가야 하는데 
  그곳에 이르기 전에 끝내기는 하려나

그냥ㅡ낱말 새로 읽기·8

  ‘그냥’ 이란 말과 마냥 
  친해지고 싶다 나는 
  그냥 그냥 읊조리면 
  속된 것 다 빠져나가 
  얼마나 
  가벼워지느냐 
  그냥 그냥 
  또
  그냥

품사 다시 읽기·4ㅡ조사

1. 
애당초 나서는 건 꿈꾸지도 않았다 
종의 팔자 타고나 말고삐만 잡았다 
그래도 격이 있나니 내 이름은 
격조사.

2. 
이승 저승 두루 이을 그럴 재준 없지만 
따로따로 있는 것들 나란히 앉히는 난 
오지랖 오지게 넓은 중매쟁이 
접속조사.

3. 
그래, 
나를 도우미로 불러라 그대들이여 
내 있어 누구라도 빛날 수만 있다면 
피라도 아깝다 않고 흘리리라 
보조사.

문장부호 시로 읽기·2ㅡ?

  물음표는 사람의 귀, 귀를 많이 닮아 있다 
  물어놓고 들으려면 귀 있어야 된다는 듯 
  보이지 않는 쪽으로 
  그 언제나 열려있다.

  물음표는 낚싯바늘, 낚싯바늘 그것 같다 
  세상 바다 떠다니는 수도 없는 의문들 
  그 대답 물어 올리려 
  갈고리가 된 것이다.

  물음표는 그렇다 문명의 근원이다 
  그 숱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낸 
  인간의 역사는 본디 
  의문을 푼 내력이다.

숲을 읽다

  뒷짐 지고 천천히 수런대는 숲에 든다 
  있어도 없는 듯, 없는 듯 또 이어지는 
  굽은 길 그 구비마다 설렘이 넘쳐난다

  이 숲의 글자는 초록 잉크 흘림체 
  옹졸한 논리로는 풀어내지 못하고 
  다 열린 가슴이라야 알아 차릴 짜임이다

  가로로 내리 긋고, 세로로 펼쳐놓은 
  상형의 글자 속을 난 자꾸 헤매는데 
  멧새는 쪼르르 와서 금방 읽고 날아간다

  햇살이 보다 못해 밑줄까지 그어주며 
  여길 봐라, 여길 봐라 채근하고 있지만 
  외마디 감탄사 밖을 넘어서지 못하고……

엉거주춤ㅡ낱말 새로 읽기·61

  ‘엉거주춤’은 신명나는 
  그런 춤이 아니지

  앉지도 서지도 
  자바지지도 못하여

  간신히 
  세상 붙들고 
  허둥거린 
  내 춤이지.

비비추에 관한 연상

  만약에 네가 풀이 아니고 새라면 네 가는 울음소리는 분명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울고 말거다 비비추 비비추. 그러나 너는 울 수 없어서 울 수가 없어서 꽃대궁 길게뽑 아 연보랏빛 종을 달고 비비추 그 소리로 한번 떨고 싶은 게다 비비추. 그래 네가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떨면서 눈 물 나게 연한 보랏빛 그 종을 흔들면 잊었던 얼굴 하나가 눈 비비며 다가선다.

우체국을 지나며

  살아가며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 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그만한 곳도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 
  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 
  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

  길 건너 빌딩 앞 플라타나스 이파리는 
  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 묵은 엽서 한 장 
  그 사연 먼 길을 돌아 발 끝에 버석거린다.

  물 다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홍수

  그랬다 홍수이고 싶었다 너를 확 덮치는 덮쳐서 거센 물살 그 물살로 휩쓸며 부수고 또 부서지면서 범람하고 싶었다.

  부수고 또 부서지면서 범람하고 싶었다 덮쳐서 거센 물 살 그 물살로 휩쓸며 그랬다 홍수이고 싶었다 너를 확덮 치는

바다ㅡ낱말 새로 읽기·13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 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구불텅 소나무

  솔 아래 바위에 앉아 그를 우러른다 
  큰 바위 두어 덩이 버선처럼 덮여있고 
  구불텅 한 굽이 휘고 또 한 굽이 틀고 있다.

  구불텅 두어 구비 돌아가게 하는 것이 
  해일까 달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걸칠 것 하나 없는데 솔은 왜 돌아갈까.

  내 모를 까닭이사 없지야 않겠지만
  달빛에 짓눌리고 햇살에 눈 감다 보면 
  헛디뎌 그도 한번씩 휘청거린 것 아닐까.

수평선

  단 한줄 긋는 것으로 세상을 다 껴안는……

가시연꽃

  불끈 
  솟아오르는 
  男根 같은 꽃 대궁

  온 몸 터럭 끝을 
  꼿꼿하게 세워서

  제 살갗 
  찢고 차올라 
  그 붉은 
  문 
  열어젖히는……

벙어리뻐꾸기

  그렇다 차라리 기침 같은 네 울음을 
  고향 지킨 재종숙의 어눌한 훈계처럼 
  무안한 얼굴빛으로 대꾸 없이 듣나니

  길 잘든 목청으로도 토해내지 못하는 
  골 깊은 원시림의 싱싱한 그 바람으로
  한 천 년 세상 거슬러 네가 그리 울어야지.

  잃고도 영 모르고 모르며 또 잃어가는 
  무엇인가 뉘 소중한 소중한 그 무엇인가 
  네 거친 울음 속에서 깨어나고 있나니.

  길은 연신 달려가도 가야 할 
  길 늘 남아있다 
  길이 
  길을 물고 
  길로 멀리 이어져 
  길 따라 
  길을 가지만 
  길 끝 이를 
  길은 없다

언덕ㅡ낱말 새로 읽기· 28

  ‘언덕’ 은 듬직하다 
  둥그렇게 미덥다

  믿음이란 그 말보다 
  외려 더 미더운데

  헛되다 
  그 누구에게도 
  언덕되지 
  못한 
  내 
  삶

그렇더라 그렇더라

  살아보니 그렇더라 우리네 삶 속에서 기쁨은 가볍고 슬 픔은 무겁더라 가벼워 쉬 사라지고 무거워 오래 남더라. 가벼워 낄낄 거리고 무거워 허우적대며 삶이란 그렇게 살 도록 짜여져 있는 연극 끝내는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으로 지더라.

발자국

  커다란 걸 남기겠다 그런 욕심 없습니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내가 걸은 형상으로 
  찍힐 것 
  찍힌 그대로 
  그냥 그냥 좋습니다.

  되돌아간다 해도 잠시 또 머물고 싶고 
  그 무렵 하던 생각 지금 다시 추스르며 
  후회가 
  묻어 있어도 
  섧다 할 수 없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흠 없는 발자국 
  눈밭에 놓이거나 모래밭에 놓이거나 
  내 걷는 
  길 위에 곱게 
  이름 쓰듯 찍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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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미로 그은 밑줄

    낭송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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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 회

    18

  • 바람도 고향바람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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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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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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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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